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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천안에 호두과자가 유명한 이유

* 천안 호두과자의 유래

 

호두는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에서 지구상 최초로 발견 되었다.

중국 한나라 때 여행가이자 외교관이던 "장건"이 호두를 들여왔다.

그는 탁월한 탐험으로 실크로드의 개척에 중대한 공헌을 하며 서양에서

포도,석류,복숭아등의 물품을 가져오기도 했다.

장건의 원정 (BC 138~BC126)

시간이 흘러 고려 충렬왕때 영밀공 유청신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호두의 묘목과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자신의 고향 천안 광덕에 심으면서 전파 되었다.

나무는 광덕사 안에심고 열매는 자신의 고향집 뜰에 심었다.

장건은 호두의 이름을 과실모양이 복숭아와 같다하여 오랑캐 호(胡) 복숭아 도(桃) 라고 하였고

우리나라로 들여올때도 그대로 들여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호도"가 아닌 "호두"로 부르면서 한글표기로 바꾸어 "호두"가 표준어가 되었다.

 

* 일본인이 만들었다?

호두과자가 만들어진 설 중 하나가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었다.

천안이 호두의 성지라는 것을 알고 제과점을 열었다고 한다.

일본이 패망 하고 점장이 자국으로 복귀할때, 그곳에서 일하던 한국인이 공장 돌리는 법을 배워 다시 열어

유명해졌다는 설이 있고,

일본인 할머니가 천안역 앞에서 호두과자를 팔다가 6.25가 터지고 피난 갔다 돌아온

한국인들이 다시 만들어 팔았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천안역

호두과자에 대해서는

1934년 故조귀금, 故심복순 부부가 천안의 특산물이 호두인 것을 알고 발명해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였던 천안에 천안역이 생기고 근처에 번화가가 형성되고 나서부터는, 

여행객이 천안을 지나갈 때나, 천안 시민들이 입이 심심할때마다 천안의 호두과자를 자주 사먹게 되면서 

전국적 유명세를 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6-70년대 철도사정이 열악했을 때 열차들이 신호대기 또는 배차조정을 위해 분기점인 천안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 판매원들이 잘 포장된 호두과자를 들고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탑승객에게 판매를 많이하였고,

장항선과 경부선이 경유하여 이용객이 많은 천안역의 배경 덕택에 전국 각지에 천안 호두과자라는 이미지가

쉽게 박힐 수 있었다는 이론이 있다.

 

* 호두과자 스포츠마케팅

천안을 연고로 하는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은 호두과자를 상품화 시켜 구단 마케팅을 실시했다.

 

구단은 이번 시즌 천안 명물인 호두과자를 이용한 몰리 호두과자를 개발해

현대캐피탈 홈경기장을 찾는 배구팬들에게 재미있는 먹거리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으며

연고지 천안에 배구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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