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싸이월드에 대한 나의 생각 난 어렸을적부터 사진찍는걸 좋아했다. 학창시절 해외여행을 가고싶었고, 국내여행도 많이 하고싶었지만 학생신분에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을 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밤 10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오후 5시까지 자습을 하면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가지고 동네주변과 친구들 방학때 여행이라고 할 수 없는 짧은 외출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한 싸이월드에 어린시절의 나, 친구들 동네의 배경 지금은 학생이 되어버린 조카들의 아기시절등 사진을 업로드하고 지우지않고 비공개폴더에 넣어두었다. 나의 싸이월드에는 나의 학창시절의 모든 추억이 담겨있고 친구들도 가끔 싸이월드에 자신의 사진이 있으면 보내달라는요청이 많았다. 최초의 가상화폐 도토리로 배치기의 .. 더보기 일본인과 7년간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나 나는 중학생 2학년때부터 군대가기 전 21살까지 일본인과 이메일로 대화를 한적이있다. 군대를 다녀오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지만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7년이란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학교를 다녀오고 이메일을 쓰면 다음날 그가 회사에서 출근해서 답장을 쓰는것 같았다. 당시 나는 학생이었고 그는 40대 아저씨였다. 처음에 역사,독도 문제로 싸우다가 점차 터놓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내가 중학생인지 몰랐다고 하였고 나도 그가 40대인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이메일을 들어가 그간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확인했다. 번역기로 돌리며 가끔 알아 들을수없는 대화도 있지만 주로 날씨, 축구경기 (월드컵,아시안컵) 스포츠 경기이야기를 많이 하였고 점차 나의 친구들 가족들 심지어 당시 담임선생님한테도 꺼내지 못한 .. 더보기 추억의 축구선수 - 앨런스미스 리즈시절의 창시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데뷔. 리즈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이며 18세에 리그에 데뷔하면서 팀내 최고 유망주로서 기대를 받았다. 2000-01 시즌에 주전 공격수인 마이클 브릿지스와 마크 비두카와 함께 공격라인을 형성하였다. 2001년에는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발탁되어 촉망받은 잉글랜드 공격수 였다. 하지만 리즈는 삐그덕 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하고 스미스는 다양한 포지션에서 고군분투 하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리즈가 강등된 이후, 에버튼이나 리버풀 등의 많은 구단이 스미스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상남자 태클 플레이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적 후 프리시즌에 반 니스텔루이와 루이 사하를 .. 더보기 Sniper Sound 내가 힙합을 처음 들어본게 MC스나이퍼의 "where Am I" 와 Gloomy Sunday로 기억한다. 그 중 Where Am i 가사 중에 "3집 계약을 끝내고 행사로 번 돈을 배치기 1집에 퍼붓고 4집에 대한 계약금으로 K-Flow 앨범을 준비" 라는 가사를 듣고 왜 MC스나이퍼가 배치기와 키네틱플로우 앨범을 준비하지? 라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엔 나는 레이블,크루,엔터테인먼트 가수에 대한 소속사라는 개념을 모르고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붓다베이비, 스나이퍼사운드 라는 크루와 소속사에 스나이퍼가 수장으로 있고 배치기와 키네틱플로우가 스나이퍼 사운드에 소속된걸 알 수 있었다. 나의 학창시절의 모든 음악은 거의 스나이퍼 사운드 노래를 들었다. 시험기간에 노트에 스나이퍼 사운드라는 낙서를 했었고 담임선생.. 더보기 추억의 축구선수 - 아르샤빈 안드레이 아르샤빈 (Andrey Sergeyevich Arshavin) 국적은 러시아 생년월일은 1981년 5월29일, 신체는 172cm 69kg FC카이라트(카자흐스탄)에서 축구선수를 은퇴하였다. 그는 UEFA 유로 2008 대회에서 맹활약을 한다. 한국팬들에게도 이 대회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팀이 러시아다. 바로 히딩크감독이 2008유로에서 러시아 대표팀의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유로 2008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마라도나라는 칭호를 얻으며 대어로 떠오른다.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등 굵직굵직한 팀들과의 숱한 염문을 뿌리던 아르샤빈이 최종적으로 종착한 곳은 아스날 FC였다. 1500만 달러의 이적료로 클럽 레코드를 세웠다. 수준급 선수가 3000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최근 이적 시장에 비하고 .. 더보기 영국과 인도의 역사 이야기 최근 tv프로 비정상회담 재방송을 우연히 보던 중 광복절특집 "피지배국vs지배국" 주제를 가지고 출연자들이 토론을 한걸 보았다. 그러다가 영국과 인도 이야기를 듣던 중 한국과 일본이 떠올랐다. 일본은 중일전쟁에 들어서면서 "신성한 황군을 더럽힌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던 조선인을 1937년 12월 [조선인 특별지원병제]와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여 조선인을 전장으로 내몰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의 전선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와 탄광으로 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인도인들을 세계1차대전에 영국을 도와 전쟁에 참전하라고 요구한다. 영국은 전쟁에 참전한다면 인도의 자치권을 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전쟁비용도 인도가 부담.. 더보기 축구 경기장 그라운드에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축구 경기장 그라운드에 유해가 안장 되었다? 현재 잉글랜드 3부리그 격인 Skybet League 1에 있는 선더랜드AFC의 홈구장인 스타디움오브라이트에 이안 포터필드의 유해가 안장 되어있다. 선더랜드는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도 익숙하고 한국팬들에게도 지동원과 기성용이 있던 클럽으로 한국팬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클럽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익숙한 인물이 있다. 바로 이안 포터필드감독이다. 이언 포터필드는 1946년 스코틀랜드의 던펌린 주에서 태어나 1964년 스코틀랜드 리그의 레이스 로버스 FC에서 프로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7년 잉글랜드 2부 리그에 속해 있던 선덜랜드 AFC로 이적해 77년까지 10년간 뛰었는데, 특히 1973년의 FA컵 결승전 에서는 당시의 강호였던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우.. 더보기 배치기 어른병 싸이월드 감성의 다이어리글 그리고 BGM 친구들과 사진속 추억들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 나만 그리워하는 느낌이 든다 정말 보고싶어서 오랜만에 연락해서 만나면 상대방도 재미있고 반가워 하지만 나만큼은 아닌것 같아 씁쓸하다 ㅠㅠㅠ 더보기 브라질전 설마 또 무관중 경기?? 우리는 최근 A매치 두경기 무관중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오늘 22시30분에 브라질전도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할지도 모른다. UAE VIP 사망으로 3일 국장으로 스포츠행사가 직격탄을 맞았다. 북한은 오랜만에 평양원정을 갔지만 북한측에서 일방적인 주장으로 무관중 경기를 치뤘고 한국에서는 TV중계도 없었고 문자중계는 거의 없었다 싶이 진행 되었다. 레바논 같은 경우는 한달째 이어지는 반정부시위가 혼돈사태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대한축구협회측에서 안전을 고려해 무관중 경기를 진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레바논과의 A매치 경기 중 후반전에 들어들자 슬그머니 관중들이 들어왔고 관중석에서 흡연을 하는 관중도 있었다. 이번 브라질전도 무관중 경기를 치르게 된다면 3연속 무관중 경기가 되어버리고 아마 세계에서 3연속 무.. 더보기 패전 후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에 광복을 맞았다.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미국에 원자폭탄 두방을 맞고 무조건항복을 하였다.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 할 수 없었고 카이로선언에서 일본의 식민지는 모두 해방되어야 하고 특히 “한국 민중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절차를 거쳐 자유와 독립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또한 연합국의 정상들은 포츠담 회담을 통해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의 네 섬과 연합국이 인정하는 작은 섬에 한정된다.”고 못 박았다. 그렇다면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히로히토 덴노의 옥음방송으로 일본의 패전이 알려진 직후, 부산지방교통국장 다나베 다몬에게 특이한 지시.. 더보기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