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y 썸네일형 리스트형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2년전 명량이라는 영화가 1700만명이라는 관객을 이끌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명량해전 이전 칠천량해전에 대해 이야기와 배설장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사로 있었던 배설은 이순신이 백의종군 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원균의 밑에서 칠천량해전에 참전하게 된다. 칠천량해전은 100척을 훨씬 넘는 판옥선 , 거북선 1만여명의 조선수군이 완전히 궤멸당한 전투이다. 실록에서는 조선수군이 활 한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하고 기록되어있다. 그 동안 승승장구 하던 조선수군은 하루아침에 모든 병력을 잃게 된것이다.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은 400여명의 아군을 버리고 소나무 아래 숨어있던 왜군들에 의해 사망한다. 조방장 김완은 일본의 포로가 되었고 끝 까지 싸우던 전라우수사 이억기 와 최호는 끝.. 더보기 승리하지 못했다면 역적이 됬을 장군 임진왜란 1592년 4월13일 일본의 침략이 있었다 오늘은 그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일본은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확보하고 의병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진주성을 함락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주성함락으로 그 밑에 조선 관군들과 의병들은 알아서 흐지부지 될거라는게 일본의 생각이었다. 당시 진주성은 김시민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김시민장군은 일본이 진주성을 노리고 집결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각지에 구원병을 요청하며 진주성의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는 김시민이 아니었다. 왜군들이 경상도를 휩쓸고 다니자 진주목사 이경은 부하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도주하였다. 상부에서 이경에게 산에서 하산하여 진주성을 지키라고 하였지만 이경은 병사 하..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