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잘못됬으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가 될수도 있었다.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북한이 38선을 넘어 선전포고 없이 남한을 침략했다.
당시 시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38선 부근에서 자잘했던 총격전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으며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장군도 조그만 국지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기습남침이었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피난 1호 인물이었다.
입법부 사법부도 이승만이 특별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정부에서는 수도를 수원으로 옮기려고 했었으나 이승만은 대전까지 내려가 버렸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 사흘만에 서울을 빼았겼고 최후의 방어선을 낙동강으로 정하고 국군은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었다.
낙동강방어선에서 국군이 고전하자 미국정부에서는 한국의 정부요인 및 피난민을 합친 약 60만명의 인원을 배에 태워서 서사모아 제도에 위치한 어느 섬에
이주 시키고 망명정부를 세우려고 했던 계획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제주도는 식수가 부족하고 땅이 척박하다고 하여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이승만이 요청했던 일본의 경우는 반일감정 및 일본 내 좌익세력의 테러우려가 있었다
일본 망명정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계획도 나름 철저했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서사모아 제도 망명정부에 대해서는 국군 고위 장교 및 그 가족 , 정부인사 및 그 가족을 우선시 했으며 한국군 약 몇개사단을 주축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민간인은 서사모아의 섬에서 정착하고 군인들은 일본 및 UN과 연합하여 아시아 방위에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1951년 1.4후퇴로 서울을 다시 빼았겼을때는 미국정부에서 이주계획을 다시한번 이 보다 더 크게 계획했었다고 한다.
미국입장에서는 남한사수가 힘들어지면 일본에서 재정비 후 다시 공격하거나 정말 서사모아로 망명정부를 계획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제안뿐이었겠지만 만에 하나 낙동강방어선이 뚫이고 남한의 사람들은 보트피플이 되어 정말 어디론가 가서 망명정부를 세웠을지도 모른다.
'Histo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타이타닉 인물들 (0) | 2018.01.24 |
---|---|
울릉도 왕국 우산국 (0) | 2017.01.28 |
승리하고도 처형당한 장군 (0) | 2016.12.11 |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그리고 태국 (0) | 2016.11.23 |
김완의 일본 탈출기 (0) | 2016.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