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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y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2년전 명량이라는 영화가 1700만명이라는 관객을 이끌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명량해전 이전 칠천량해전에 대해 이야기와 배설장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사로 있었던 배설은 이순신이 백의종군 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원균의 밑에서 칠천량해전에 참전하게 된다.


칠천량해전은 100척을 훨씬 넘는 판옥선 , 거북선 1만여명의 조선수군이 완전히 궤멸당한 전투이다.


실록에서는 조선수군이 활 한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하고 기록되어있다.


그 동안 승승장구 하던 조선수군은 하루아침에 모든 병력을 잃게 된것이다.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은 400여명의 아군을 버리고 소나무 아래 숨어있던 왜군들에 의해 사망한다.


조방장 김완은 일본의 포로가 되었고 끝 까지 싸우던 전라우수사 이억기 와 최호는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다.


여기서 배설장군은 12척의 판옥선을 끌고 도망친다 


이 12척의 배가 후에 명량해전에서 300척이 넘는 왜군을 막아낸 판옥선이다.


영화 명량에서 배설장군이 "칠천량에서 그나마 나라도 12척을 건진게 아니냐" 라고 소리치는데 


그 말이 맞는말이다. 


하지만 배설은 탈영을 한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투의 불리함을 직감하고 비밀리에 후퇴작전을 모의한다.


적의 대선단이 원균의 주력함대에 공격 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배설은 전투를 관망하다 원균의 명령을 어기고 12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도망쳤다.


한산도로 도망친 뒤 군사시설 양곡 , 군기와 운용자재를 불태우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


그 후 배설은 숨어지내다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됨에 따라 이순신의 지휘를 받게된다.


배설은 칠천량해전 이후 병색이 완연해지고 몸 상태가 더욱 나빠지자 병가를 내고 이순신의 허가를 받아 고향에 가서 쉬었다.


여기서 배설은 병가를 내 고 도망쳤다는 평가와 병가를 낸 상황에서도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등 이순신을 도왔다는 평가가 있다.


배설장군은 1599년 선산에서 권율에게 붙잡혀 서울에서 참형을 당한다.


비록 칠천량해전에서 패 하고 도망쳤지만 그 뒤 그가 쌓은 무공이 인정되어 선무원중공신 1등에 책봉된다.


탈영했다는 이유로 참수당한 배설의 죽음을 전쟁의 책임을 회피 하려는 당시 선조의 권력세력의 음모도 있다.


이 처럼 배설장군의 평가는 지금 까지도 엇갈리고 있다.


if 배설장군이 칠천량에서 열심히 싸우고 전사하였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